항상 좋은 상황이 벌어졌다. 무식하게 소처럼 일만하던 수석이 갑자기 팀장이 되고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승진도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때였다. 막상 팀장이 되고 나서는 무지하게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뭔가 보람이란게 있었다. 사업 철수로 전에 다니던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와서 이직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2번이나 재계약 의견서를 작성했고, 별일 없으면 이번달 말에 아마도 재계약을 할 것이다. 원래 목표였던 최소 3년은 다니자던 약속을 이제는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재작년에 정말 힘들어서 1년 마치고 이직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참 힘들었던 팀장님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셨다. 그 뒤에 오신 팀장님은 그래도 나를 좋게 보셔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일할 수 있었다.

지금 하는 일도 거의 막판에 포기할 때쯤에 좋게 보여서 그나마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 하는 일이 없었으면 몸은 참 편할 수 있었겠지만 마음만은 정말 불편했을 것이다. 여기는 철저하게 성과 위주이고 매년 그 성과를 근거로 조직 개편이 되고 사업이 재편된다. 밖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안에서 있어보니 결코 쉬운 조직이 아니라는 생각을 절절히 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인사 체계를 가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정해진 틀에 갑갑해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책좀 더 보고 자야겠자. 소설책.

좀더 버티고 소처럼 일하면 내게도 뭔가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책 좀 더 보고 일찍 자야지.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들 돌보고 병원 실습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좀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나도 미래가 무섭기는 하다. 나름 20년을 열심히만 살아와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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