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은행에 들어왔을때, 상당히 유능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과장님에게 일을 배웠다. 본부에 들어오기 전에 6개월 정도 지점에서 인턴 생활을 한 이후로는 거의 9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간에 경력을 완전히 바꾼 적은 없었고 같은 분야의 일을 업무만 바꿔서 하게 되어서 다양한 업무를 접하지는 못한다고 봐야 한다.

 요즘 느끼는 점은, 철저하게 전문가의 좁고 험난한 길을 갔던 내가 언제라도 이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보면 지점에서 나름 CE(일반은행의 PB)나 기업금융심사역과 같은 나름 촉망받는 일을 하다가 본점으로 들어와서 경험도 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영업이나 오퍼레이션 업무를 하던 사람이 본부에서 기획업무를 했을 때 잘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리고 내가 있는 외국계 은행의 경우에는 영어를 못하면 어려움의 정도는 곱하기가 아니라 제곱으로 늘어난다.

 솔직히 나도 가끔 그렇게 문책성 인사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갖은 고생끝에 그나마 인정을 받아서 전문가 행세를 하지만, 조직의 특성상 언제라도 새로운 부서 또는 지점에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때 과연 나도 잘할 수 있을까? 아마, 거기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잘하려고 노력을 할꺼다.

 지금이야 젊지만 나중에 좀더 나이를 먹어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삶의 시간이 길어지고 나이 들어서 골프치고 여행다니는 인생은 개소리가 되어간다. 점점 더 많이 일하고 소득을 벌어야 늘어난 수명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젊었을때 철없이 일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다. 일 안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게 일해도 돌아오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점점 옳고 그름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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